아크 오버행과 웨이브 오버행으로 출력한 수평 돌출부 시편의 표면과 처짐을 나란히 비교한 사진
연구진이 공개한 아크 경로와 웨이브 경로의 출력 시편 비교. 웨이브 경로는 같은 층의 이웃 압출선을 측면 지지대로 이용한다.사진·자료: Janis A. Andersons, Salomé Sanchez, Tom Vaneker / Wave Overhangs GitHub 프로젝트

벽에서 수평으로 뻗어나온 90도 돌출부를 일반적인 3축 재료압출 3D프린터로 지지재 없이 출력할 수 있을까. 네덜란드 트벤테대(University of Twente)의 야니스 안데르손스(Janis A. Andersons), 살로메 산체스(Salomé Sanchez), 톰 바네커(Tom Vaneker) 연구진은 2026년 Additive Manufacturing Letters에 발표한 연구에서 하드웨어가 아니라 노즐이 움직이는 경로 자체를 바꾸는 방법을 제시했다. 연구진이 ‘웨이브 오버행(Wave Overhang)’이라고 부른 방식은 파동이 퍼지는 과정을 본뜬 툴패스로, PLA를 사용한 일반적인 3축 FDM 장비에서 수평 캔틸레버를 지지재 없이 출력하고 기존 아크 기반 방식보다 처짐과 빈 공간을 줄였다고 보고했다.

여기서 말하는 90도 오버행은 짧은 ‘브리지(bridge)’와는 성격이 다르다. 브리지는 보통 압출선의 양쪽 끝에 지지점이 있어 노즐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재료를 걸쳐 놓을 수 있다. 반면 캔틸레버 형태의 수평 돌출부는 한쪽만 기존 모델에 연결되고 나머지는 허공으로 뻗는다. 프루사(Prusa)도 일반적인 FDM 설계 지침에서 각 층은 아래층의 지지가 필요하며 짧은 수평 브리지는 지지재 없이 출력할 수 있지만, 급격한 오버행이나 공중에서 시작되는 형상에는 통상 지지재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웨이브 오버행의 접근법은 이 문제를 “노즐 아래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가 아니라 “같은 층에 이미 놓인 재료를 다음 압출선의 지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바꾼다.

아래층 대신 옆의 압출선을 지지대로 쓴다

웨이브 오버행에서는 돌출 영역 전체를 한 번에 직선으로 가로지르지 않는다. 먼저 기존 모델과 연결된 가장자리에서 압출을 시작한 뒤, 그 선에 일부 겹치는 다음 선을 조금 더 바깥쪽에 놓는다. 이렇게 앞서 굳기 시작한 압출선이 다음 압출선을 옆에서 붙잡고, 그 다음 선이 다시 다음 선의 지지대가 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현재 공개된 PrusaSlicer 실험용 구현에서도 이 원리가 설정에 직접 반영돼 있다. 기본 시작값으로 제시된 웨이브 선 중심 간격은 0.35㎜, 압출 선폭은 0.4㎜다. 중심 간격을 선폭보다 작게 잡아 인접한 압출선끼리 겹치게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문서는 이런 측면 접착이 허공에 놓이는 웨이브 선을 안정시키는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중요한 점은 노즐이 3차원 공간에서 특별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프린터는 기존과 똑같이 X·Y·Z 3축을 움직이고 한 층씩 적층한다. 바뀌는 것은 슬라이서가 그 층 안에서 만들어 내는 2차원 압출 경로다. 연구진이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경로 생성에는 파동 전파를 설명하는 하위헌스 원리(Huygens' principle)가 응용됐다. 현재의 파면에 있는 여러 점에서 작은 원이 퍼져나간다고 보고 그 결과로 다음 파면을 만든 뒤, 같은 계산을 반복해 돌출 영역을 채운다. 연구용 구현에서는 이 과정을 Grasshopper 스크립트로 계산했다. 이 방식 때문에 경로는 단순히 원을 크게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모서리를 돌아가거나 구멍 양쪽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진과 구현 개발자는 이를 실제 파동의 회절과 비슷한 행동으로 설명한다. 현재 공개된 구현 역시 파면을 재귀적으로 생성하면서 사용 가능한 공간을 채우고, 모서리와 구멍 주위까지 경로를 이어 가도록 설계돼 있다.

출발점은 ‘아크 오버행’이었다

90도 오버행을 옆 방향의 압출선으로 지탱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웨이브 방식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개발자 스티븐 맥컬록(Steven McCulloch)이 2022년 공개한 ‘아크 오버행(Arc Overhang)’은 기존 형상의 가장자리에서 원호를 만들고, 다시 그 원호 위에서 새로운 원호를 시작하는 과정을 반복해 수평 돌출부를 채웠다. 아크 오버행 저장소에 설명된 알고리즘은 먼저 시작할 가장자리를 선택하고 그곳에서 가능한 큰 원호를 만든 다음, 새 원호 위에 또 다른 원호를 재귀적으로 생성하는 방식이다. 즉 아래에서 받치는 대신 먼저 놓인 원호가 다음 원호를 옆에서 받치는 원리는 웨이브 방식과 같다. 문제는 형상이 복잡해질 때다. 일정한 원호를 반복하는 방식은 단순한 외곽에서는 효과적이지만 오목한 영역이나 구멍, 여러 갈래로 분기되는 경계가 등장하면 경로가 잘게 나뉘거나 채우기 어려운 공간이 생길 수 있다. 웨이브 오버행은 이 부분을 고정된 원호 생성 문제가 아니라 공간 전체로 퍼지는 파면 계산 문제로 바꿨다. 현재 공개 구현도 아크 방식과 비교해 오목한 영역과 구멍을 더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고 툴패스가 부드럽게 연결되는 것을 주요 차이로 설명한다. 따라서 ‘웨이브’라는 이름은 완성된 압출선이 단순히 물결 모양으로 보이기 때문에 붙은 표현이라기보다 경로가 생성되는 계산 원리가 파동 전파를 닮았다는 의미에 가깝다.

연구진은 처짐을 3D 스캔으로 비교했다

연구의 의미는 흥미로운 출력 사례 하나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연구진은 아크와 웨이브 방식의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 난도가 다른 단일층 수평 오버행 시편을 제작했다. 공개된 연구 데이터에는 형상을 easy·medium·hard로 나누고 아크와 웨이브 방식을 각각 적용한 기록이 포함돼 있다. 각 조건은 세 차례 반복됐으며 출력 순서도 무작위화했다. 출력물은 3D 스캔한 뒤 Zeiss Inspect에서 형상 편차를 분석했고, 원본 스캔 메시와 측정값 CSV도 연구 데이터로 공개됐다. 논문에 따르면 웨이브 경로로 출력한 단일층 시편은 아크 경로보다 표면 처짐이 유의하게 감소했고, 형상 난도가 높아질수록 빈 공간을 채우는 능력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특히 복잡한 형상에서 아크 경로가 남기는 간극을 웨이브 경로가 더 안정적으로 메웠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연구진은 첫 번째 수평층만 출력하는 데서 시험을 끝내지 않았다. 웨이브 방식으로 만든 수평층 위에 다시 여러 층을 적층한 시편을 제작해 허공 위에 형성한 첫 층을 실제 다음 층의 바닥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논문은 다층 시편뿐 아니라 서로 다른 3차원 형상의 추가 데모 출력물도 제작해 적용 가능성을 시험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웨이브 오버행의 핵심이 ‘필라멘트를 허공에 띄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첫 번째 압출선은 기존 모델에 붙어 있고, 다음 선은 첫 선에 붙으며, 이렇게 옆으로 지지를 연장해 새로운 바닥을 한 층 안에서 단계적으로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현재 구현은 브리지·지지재와 함께 쓰는 방향

연구 결과가 곧바로 모든 오버행의 지지대를 없애는 범용 기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 공개된 구현은 공식 PrusaSlicer 코드를 기반으로 한 별도 포크이며 설정에도 Use wave overhangs (Experimental)이라고 명시돼 있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구현이 브리징을 완전히 대체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본 설정에서는 기존 브리지가 적합한 형상에는 브리지 경로를 사용하고, 그렇지 않은 돌출 영역에 웨이브 경로를 적용할 수 있다. 사용자가 원하면 브리지까지 웨이브 방식으로 강제할 수 있으며, 웨이브로 처리하기 어려운 영역에만 일반 지지재를 남기는 혼합 방식도 지원한다. 이는 실제 슬라이서 기능으로 발전할 경우의 방향을 보여준다. 모든 오버행을 한 알고리즘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짧은 브리지는 기존 브리징, 작은 캔틸레버는 웨이브, 넓거나 위험한 영역은 지지재​로 나누는 식이다. 대신 현재 웨이브 방식에는 상당히 보수적인 출력 조건이 필요하다. 공개 가이드의 권장 시작값은 0.4㎜ 웨이브 선폭에 0.35㎜ 간격, 출력 속도 2㎜/s, 팬 속도 100%다. 일반적인 FDM 외벽이나 인필 속도와 비교하면 웨이브 구간을 매우 천천히 출력하도록 설정돼 있다. 각 선이 다음 압출선을 지탱하기 전에 충분히 식고 단단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지재를 줄인다는 사실이 곧바로 모든 모델의 출력 시간 단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지대 생성과 제거 시간이 사라지는 이점이 있는 반면, 웨이브 구간 자체는 현재 단계에서 느리게 출력해야 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넓어질수록 심해지는 뒤틀림

현재 프로젝트가 가장 큰 미해결 문제로 꼽는 것은 워핑(warping), 즉 돌출부가 위나 아래로 말리면서 변형되는 현상​이다. 작은 국부 오버행에서는 깨끗한 출력 사례가 나오지만 수평으로 뻗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변형이 커질 수 있다고 프로젝트 문서는 설명한다. 원인도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다. 현재 연구·개발 문서에서는 먼저 압출된 플라스틱의 위아래가 서로 다른 속도로 식으면서 발생하는 열수축과 잔류응력을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후 층을 쌓으면서 아래의 웨이브 층이 다시 가열돼 수축하는 현상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넓은 수평부에서는 노즐과 새로 압출되는 필라멘트가 아직 충분히 단단하지 않은 구조를 아래로 누를 수 있다. 초기에 한두 개의 경로가 내려앉으면 이후 경로의 높이도 어긋나면서 변형이 연쇄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것이 현재 개발 문서의 설명이다. 폴리머의 형상기억 효과 역시 가능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조사되고 있지만, 프로젝트 측도 이들 메커니즘의 상대적인 영향은 아직 연구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냉각을 무조건 강하게 한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웨이브 층 자체에서는 빠른 고화를 위해 높은 팬 속도가 유리하지만, 한쪽 방향에서만 급격하게 식으면 압출선의 위아래에 온도 구배가 생겨 오히려 휨을 만들 수 있다. 프로젝트 문서는 위·아래에서 보다 균일하게 냉각하는 시험에서 단일층 뒤틀림이 줄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재료에 따른 범위도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 논문의 핵심 검증은 PLA를 이용해 진행됐으며 연구진 역시 다른 재료와 공정 조건에서 어디까지 적용되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결국 웨이브 오버행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변화는 “FDM 프린터는 90도 수평면을 출력할 수 없다”는 명제가 반드시 하드웨어의 절대적 한계는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노즐과 같은 3축 운동 구조라도 압출선을 어떤 순서와 간격으로 놓느냐에 따라 이전에는 지지재가 필요하다고 여겼던 영역의 일부를 출력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결과를 ‘지지재가 필요 없어졌다’고 확대하기에는 이르다. 논문은 특정 재료와 시험 조건에서 웨이브 경로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공개 구현은 이를 실제 슬라이서에서 시험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져왔다. 넓은 스팬의 워핑, 재료별 차이, 출력 속도, 형상별 안정 범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오히려 현재 단계에서의 현실적인 가능성은 모든 지지재를 없애는 것보다 필요한 곳에만 지지재를 남기는 것에 가깝다. 기존 브리징과 웨이브 경로, 전통적인 지지 구조를 형상에 따라 조합할 수 있다면 복잡한 내부 지지대처럼 제거하기 어려운 구조나 작은 수평 돌출부에서 재료와 후처리를 줄일 여지가 있다. 웨이브 오버행의 다음 과제는 90도를 출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이 어느 크기와 재료, 속도까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지도처럼 밝혀내는 일​이다.